작성일 : 17-07-20 17:16
[기획시리즈] 길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국도48호선 (제117호)
조회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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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지리적·사회적 의미

장소성으로서 도로를 떠올리기에 앞서 ‘길’의 지리적·사회적 의미는 ‘나’를 다른 사람의 세계로 이끄는 장소이며, 잠시 머물 수 있지만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것이 ‘길’이다. 길은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소통이 주요목적이며 장소와 장소를 지점과 지점을 집과 집을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길 위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고독한 점에 머물던 나를 세상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통로가 된다. 길과 길은 서로 연계성과 계층성을 가지고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어야 하며 우리를 어디든지 이어주기 위해서 끊어짐이 없어야 제대로 된 기능을 한다.

서울의 서쪽 끝 강서구 개화동에서 지금은 경인운하로 변해버린 굴포천을 건너 고촌면, 김포읍, 양촌면, 통진읍을 지나서 강화도의 전등사, 마니산으로 낭만 가득한 김포들녁을 달렸던 70~80년대 추억의 길은 최근 국도48호선 주변으로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그만 갈 길을 잃고 땅 속으로, 바깥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제는 시가지 도로로 개념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역간을 연결하고 통과하는 지역의 정체성과 대표성을 띄고 있던 국도가 주변 토지이용의 급격한 변화로 정체성이 변화되고 삭막해진 도로환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민모습을 찾아보고, 도로환경을 리모델링하여 도로재생의 관점에서 다가가고자 답사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국도48호선 시점과 최북단의 섬 교동도

하점면 신봉리삼거리에서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출입증을 교부받아 시점부인 양사면 인화리에 도착하였으나 국도 시점부 표석은 찾지 못하고 1998년에 설치된 “양사~하점간 도로개수 및 포장공사” 준공표석을 최근 폐쇄된 해병대 해안초소 아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지역은 민통선 구역이자 막다른 지점으로 90년대 말에 국도규격으로 개수되었으며, 연장 3.44km인 교동대교가 2014년 7월에 개통되어 군도11호선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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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간선도로망인 일반국도의 시점부에 시점표석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도로의 기능적 측면만 중요시하고 역사·문화적 관점은 도외시하는 도로사업 관계자들의 저변에 깔린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으로 앞으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교동도는 생각했었던 것보다 평야가 넓고 두 개의 큰 저수지가 있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었다. 고려 충렬왕 때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공자의 초상화를 모셨다는 유서 깊은 교동향교는 제법 큰 규모에 명륜당과 대성전은 물론 제수용품을 보관하던 제기고까지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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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대교 종점부의 봉소사거리는 군도11호선과 이어지며 차량과 보행자의 교통량이 현저히 적은 지역이지만 도로안전, 교통안전을 빌미로 과다한 규모의 교통섬, 안전지대에 시선유도봉이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다. 정온화된 도로환경을 훼손하여 오히려 도로안전과 도로환경, 도로경관 관점에서 부정적인 효과를 끼치고 있어, ‘과유불급’의 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강화지석묘를 지나 강화읍내로 가는 길

인화리에서 강화읍 외곽까지는 왕복2차로 구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이미 4차로 구간인 강화읍에서 인화리까지는 왕복4차로 국도건설공사가 진행 중에 있어 한적한 시골길을 적당히 굽이굽이 돌아서 달리는 재미는 불과 2년 뒤면 질주만이 존재하는 달리는 4차도로의 삭막함에 파묻힐 것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애잔함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국도변에 자리잡은 세계문화유산인 강화지석묘는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한다. 예전에는 주변의 포도밭과 어울려 서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웠으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다고 수만 평의 땅을 고르고 강화역사박물관까지 건립하여 지석묘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이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전하는 올바른 방법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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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내에는 우리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역사·문화유산 자원이 있지만 강화풍물시장이나 인삼센터에 들렀다 마니산, 전등사, 보문사 등으로 발길을 옮기며 통과하는 지역으로 인식되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고종 때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왕도를 강화로 옮겨 39년간 왕궁이 있었다. 전통적인 한옥양식에 기독교식 건축양식을 혼합하여 1900년에 건립한 성공회강화성당, 광성보, 초지진 등 근대사의 격랑 속에 호국의 선봉에 나섰던 수많은 역사유적이 곳곳에 남아 급변하였던 19세기말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을 거치며 외적의 공격을 막아내던 관군의 붉은 피가 물들었던 역사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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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변신하는 길 – 도로재생

1990년대 중반 이후, 김포지역이 수도권 서부지역으로 개발되면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주변이 바뀌고 있다. 2차로에서 4차로, 어느새 6차로, 다시금 우회도로가 생기고 강변도로가 개설되더니 그물망처럼 어지럽게 도로가 놓였다. 넓디넓은 김포평야에 북서풍을 막아버릴 정도로 방풍벽처럼 빼곡히 아파트가 들어서더니 어느새 국도48호선은 땅 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잃어버린 국도48호선의 정체성을 찾으러 나섰던 이번 답사는 역사·문화유산의 흔적을 살펴본 감흥은 잠시뿐, 마치 끝나지 않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의 기억처럼 혼미함이 가득하다. 경제성·기능성·효율성의 논리에 갇혀 노선이 통과하는 지역의 대표성과 정체성을 상실하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안전을 빙자한 온갖 시설물로 치장되어 병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치유할 생각은 커녕, 방치되어 있는 삭막하고 살벌한 도로환경에 내팽겨진 국도를 어떻게 하면 추억을 되살리고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조화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되찾아가야 할 것인가.

이번 답사를 마무리하며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도로와 환경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문제는 기술적·기능적 관점에 충실하려는 형이하학적인 사고에 집착하는 엔지니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야 진하게 다가오는 깨달음은 국도 주변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 다양한 분야의 소양과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교양있는 엔지니어와 관련 전문가들의 지식과 사상, 철학의 결과물로서 바람직하고 집약된 도로환경이 ‘도로재생’ 차원에서 제시되고 반영되어야 일차원적 생존차원에서 탈피하여 품격을 헤아릴 수 있는 다차원의 생활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러한 커뮤니티와 이상적인 노력이 결집되었을 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 편안하고 자연스런 길의 모습이 곧 문화이자 유산이 되어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을 하였다. ▣

손원표_wpshon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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