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20 16:56
[기획시리즈] 길 위의 역사, 옛길 문경새재 (제116호)
조회 :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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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은 인생여로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주변의 사람들은 오로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지나가는 과정과 주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인생역정과 삶을 되돌아보면 목적이나 결과보다 과정을 소중히 여길 때 꿈과 희망, 노력은 더욱 가치를 지닐 것이다.
 
조상들의 발자취와 이야기가 묻어있는 옛길을 걸으며 자연과 역사를 느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쫓기는 삶 속에서 여유를 갖지 못하고 브레이크 없는 페달을 밟으며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해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마음재생의 여유로움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할 수 있다.
 
 
문경새재를 바라보면서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던 큰 길 ‘영남대로’의 중심에 있었던 ‘문경새재’는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 길을 오르던 선비들뿐만 아니라, 조선통신사, 경상도 관찰사 등이 통행하였던 곳으로 예로부터 기쁘고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 곳이라는 뜻에서 들을 문(聞), 경사 경(慶), 문경(聞慶)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문경새재를 오를 때마다 아픈 역사가 떠오른다. 임진왜란 때 상주를 거쳐 북상하는 왜군을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서 막지 못하고 패퇴하여 한양이 쉽게 함락되었으며,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을 가고 그 후 일 년 동안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왜군들에게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답답함을 누를 길이 없다.
 
새재는 조령(鳥嶺)으로 ‘새들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주변에는 주흘산(해발 1,106m)과 조령산(해발 1,026m)이 우뚝 솟아 있어 우리나라의 지형상 흔하지 않은 물리적으로 높은 고개이다. ‘새재’는 순수 우리말로, 깃털이 달린 짐승으로 날아다니는 ‘새’와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인 ‘재’를 말한다. 제3관문이 있는 조령관은 해발 650m로 상당히 높은 곳인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위치하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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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에 있는 관방유적은 조선이 겪었던 두 차례의 전쟁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제2관문의 축성 이후로 관방을 추가로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며 병자호란 직후부터 문경새재에 성을 증축하자는 상소문 등의 의견이 올라와 1710년경 제1관문과 제3관문이 완성되었다.
 
 
조화로운 새재 길의 모습들
 
문경새재의 1관문에서 3관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옛길과 새길이 수시로 교차되며 서로의 참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주흘산과 조령산 일대에 조림을 한 사유림을 관리하기 위해 임도를 겸해서 개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길은 계곡, 바위, 나무, 물길들과 부딪히거나 부담을 주지 않고 조화로움을 품고 있는 편안한 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계곡을 건너 비탈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서 산비탈로 이어지는 길은 무리한 지형훼손이 드러나지 않으며 걷는 사람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자연과 지형이 조화로운 길의 본보기로 다가온다. 길 가의 바위와 나무를 훼손하지 않으려 돌아가는 형태로 조성된 측구와 야트막한 석축, 콘크리트보다는 돌쌓기로 만들어진 물길과 돌무더기들은 맑은 계곡에 몰려있는 갈겨니들의 힘있는 몸짓과 함께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이 뻗쳐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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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 길의 자연과 문화
 
문경새재에는 제1관문을 지나면 관찰사에서 현감까지 여러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의 송덕비를 비롯하여 많은 비석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투박한 한글로 새겨진 ‘산불됴심비’는 민중들을 배려하여 순수한글에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볼수록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산불을 내는 일과 나무 베는 일을 금지하라는 이 비석은 조선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추형 자연석에는 마른 이끼가 덮여 있어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문경새재 길에는 밑둥에 ‘V’모양으로 상처 난 소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잔뜩 이고 있는 것이 참 특이하다. 장승이 마을 앞에서 큰 입을 벌리고 있듯 움푹 패인 모양으로 서있는 육송들은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조선사람들을 강제 동원하여 연료로 사용할 송진을 채취했던 자국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이며 억센 생명력을 뽐내는 소나무가 대견스럽고 고된 역사를 이겨낸 역군이며 산증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숙연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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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알고 있는 상식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리랑’은 ‘정선, 밀양, 진도아리랑’이 3대 아리랑이지만 고개의 노래인 ‘아리랑’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개인 문경새재에도 ‘아리랑’이 없을 리 만무하다. 황소걸음처럼 무디고 유장한 가락의 문경새재 아리랑 곡조는 ‘강원도 아라리’에 가까운데 이것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양식과 환경이 강원도와 비슷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에필로그
 
땅 위의 어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이동하는 경로를 우리는 길이라 부르며 ‘길’은 산 넘고 물 건너는 일을 끝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산을 한 번 넘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물을 한 번 건너야 하고 물을 건넌 다음에는 또 반드시 산을 넘어야 한다. 산을 연거푸 두 번 넘을 수 없으며 물을 연거푸 두 번 건널 수 없다. 그것이 길이다. ‘길’은 그렇듯 고개, 굴과 나루, 다리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첨단문명과 물질만능주의, 성과주의 등의 물결에 휩쓸리고 정신보다는 물질의 덫에 빠져, 조상들의 흔적과 땀과 문화가 어우러진 우리들의 ‘길’은 시간과 속도 이상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아닌 존재가 되어 기능성과 경제성만이 존재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분명 ‘길’은 아직도 변함없이 산천 위에 존재하고 있다. ‘길’이 산천 위에 존재하는 한, 걷는 길이든 차량이 달리는 길이든 고개와 나루의 조화로움처럼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길’ 위에서 ‘지혜’를 찾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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