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1-20 14:24
디지털 리터러시 없이 맞는 미래는 불공평하다 (제121호)
조회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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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터러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은 소위 문맹(illiteracy)을 일컫는 말인데, 문자는 읽고 있으나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속담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깊은 생각이 따르지 않는 글 읽기로는 문장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문맹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문해력을 뜻하는 리터러시(literacy)는 글을 올바르게 읽어 이해와 추론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OECD의 지난해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해력은 회원국 평균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연령이 높을수록 평균보다 낮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는 디지털 지식사회에서 살아가고 배우고 일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다. 컴퓨터나 디지털 도구의 활용 능력인 ‘컴퓨터 리터러시’를 뛰어 넘는 문해력이다. 컴퓨터를 쓰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고 해서 디지털 문맹을 탈출했다고 보기 어렵다. Paul Glister는 1997년에 같은 제목의 책을 통해, 단순히 컴퓨터를 사용하는 능력을 넘어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비판적 사고력과 다양한 출처의 여러 형태의 정보를 이해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는 새로운 정보로 조합하여 올바로 사용하는 능력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를 정의하였다. 기자이자 연구자인 구본권은 기기의 조작법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와 사회 구성원이 벗어나 생존할 수 없는 지배적 환경이 된 기술의 영향력에 대한 이해이며, 미디어 이해와 활용의 핵심이 되는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고등교육 연구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활용을 지원하는 영국의 정보시스템합동위원회(JISC)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7대 요소로,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영역에서 비판적으로 읽고 창의적으로 학문적·전문적 소통을 창출), 소통과 협업(학습과 연구를 위하여 디지털 네트워크에 참여), 경력과 정체성 관리(디지털 명성과 온라인 정체성을 관리), ICT 리터러시(디지털 기기와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도입하고 적응하며 사용), 학습 기량(기술기반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학습), 디지털 학문(디지털 시스템에 의존하는 새로운 학문적, 전문적 연구에 참여), 정보 리터러시(정보를 발견, 해독, 평가, 관리, 공유) 등을 꼽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제2의 기계 시대는 공평하지 않다

MIT의 Brynjolfsson 등은 카네기멜론대 로봇공학자 Moravec의 역설적 주장(계산·분석 등 사람에게 어려운 일은 컴퓨터에게 쉽고, 걷기 등 단순 동작을 하는 로봇은 오히려 만들기 어렵다)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저서 ‘제2의 기계 시대(The Second Machine Age)’에서 인간보다 더 지적 능력이 뛰어난 기계의 출현을 예견하며 고도의 지식노동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들은 기계와의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나고, 기술 발전의 수익은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소수의 혁신가들이 독식하게 된다. 이들은 시장을 지배하지만 다음 세대 혁신가들에게 또 밀려난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Yuval Harari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도 비슷한 전망을 엿볼 수 있는데, 기술 혁신을 통해 신의 영역으로 승격된 사람들과 초능력을 갖지 못해 쓸모가 없어져 강등된 사람들 간의 불평등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기술은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Brynjolfsson 교수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통해 미래의 부정적 전망을 극복하고 인류가 풍요를 지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공존의 틀 바깥에만 머무르면서 기술혁신이 초래할 양극화의 그늘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문맹의 상태에서는 불평등한 승자독식 구조에 저항하는 ‘신(新)러다이트’가 되기도 어렵다.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3D 프린터의 존재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이 글의 독자 중 실제로 3D 프린팅을 경험한 분들이 얼마나 될까? 인공혈관에서 교량, 심지어는 케이크까지도 만든다는 이 프린터는 말만 하면 원하는 형태의 물건을 만들어 주는 신기한 기계가 아니다. 인쇄용으로 흔히 쓰고 있는 레이저 프린터는 우리가 타이핑한 내용을 컴퓨터가 바꿔준 기계적 신호에 따라 광선으로 상을 맺은 드럼에 토너의 카본 가루를 달라붙게 하고 롤러로 압착하는 과정을 거친다. 마찬가지로, 3D 프린팅을 위해서는 대상물의 3차원 데이터를 생성하여 기계가 이해하는 모델로 만드는 과정(입체스캐너를 다룰 줄 알거나 캐드와 비슷한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을 선행해야 하며, 프린터는 이 좌표데이터를 기반으로 플라스틱, 세라믹, 금속 등의 재료를 적층, 또는 절삭하는 방식의 기계적 작업을 반복하여 목적물을 형성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모델링이라는 첫 단계에 익숙하지 못하다. 맞춤제작 혁신으로 1인 공장 시대를 연 3D 프린터는 제조업과 R&D의 영역을 넘어 학습, 취미용 도구까지 되었지만 우리나라 SOC산업, 특히 도로 분야의 활용 시도는 접하기 어렵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염려되지만, 잠자고 있는 3D 프린터 사례는 우리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변화에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지도 모른다. 융합을 통해 ‘초연결(hyper connection)’과 ‘초지능(super intelligence)’ 세상을 구현한다는 시대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자신만의 칸막이를 낮추고, 디지털 리터러시를 통해 습득하거나 연계한 ICT를 기반으로 다학제적 영역으로 섞여 들어가야 한다. 도로 업역 안에서만 구상하는 도로의 미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주체들은 자원·노동력·실행·서비스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되는 언저리에서 남들이 끌고 가는 혁신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JISC의 디지털 리터러시 7대 요소 중 우리는 무엇을 갖추고 있는가.


디지털 기술의 비판적 이해와 생산적인 참여해야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 기술을 의미하는 ICBMA에 기반한 디지털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그 확장 영역과 파급 효과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IBM의 인공지능 의사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사용 중인 길병원 등 국내 6개 병원 컨소시엄은 왓슨과 협진 수가를 반영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인간 바둑기사들을 굴복시킨 알파고 기존 버전을 100:0으로 꺾은 새로운 인공지능 ‘알파고 제로’는 기보학습도 거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데이터 없이 알고리즘만으로 목적을 달성하여 ‘데이터가 디지털 시대의 석유’라는 빅데이터계의 주장마저 무색하게 하고 있다. ICBMA는 또한 개별적 발전을 넘어 집적화된 형태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미래형 첨단도시인 ‘스마트 시티’가 대표적으로서 오래전부터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논의가 활발하며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기술혁신의 키워드들이 마케팅 용어화, 또는 구호화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혁신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미래의 실체적 본질에 대한 탐구는 젖힌 채, ICBMA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비판적 사고를 기반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로 무장한 이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 있을 미래의 다양한 모습을 읽고, 그 안에서 유의미하게 생존하기 위한 방법도 찾을 수 있다. 기술 구조와 원리에 무지한 채로는 정보 비대칭과 판단의 오류가 만들어 내는 디지털 시대의 그늘 속에서 공평하지 못한 미래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이 가세하는 새로운 산업혁명은 일반인과 전문직,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을 실업자로 만들 것이 분명하다. 주입식 교육과 공공·대기업 중심의 평생직장을 배경으로 성장해 왔으나, 정작 사회안전망은 촘촘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실직은 실로 공포스러운 일이다.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는 스타트업 활성화는 청년 뿐 아니라,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춘 중년과 노년에게도 기회가 될 것이다.

ICBMA가 가져 올 자동화된 미래의 기술 변화에 대한 근본을 이해하고 모두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하여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자. 앞서 언급한 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컴퓨터기반 환경에서 문제해결력’은 데이터가 분석된 30개국 중 18번째였다. ▣


조성민_chosmin@e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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