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19 09:48
“포용” 국토와 지역 SOC (제126호)
조회 :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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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용을 생각함

2016년, 세간에서 포용적 성장이니 포용도시니 하는 논의가 한창인 것을 보고 “포용적 국토 실현을 위한 정책과제”를 주제로 연구한 적이 있다. 나름 열심히 했으나 진부하고 부족한 보고서를 냈다. 미흡한 만큼 많은 비판을 예상했지만, 거의 반론이나 후속 논의가 따르지 않는 걸 보니 완전 무시당했었나 보다. 유행에 편승하는 것이 그렇지, 뭐. 지금 생각하면 고민이 너무 부족했다.

제법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 사회가 많이 바뀐 것 같고, 다시금 심심찮게 포용 운운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국토연구원에서도 “포용적 국토발전을 위한 지역 SOC” 같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 발 앞서 포용을 언급한 자로서, 다시 포용을 논하려는 연구진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라면서, 포용의 개념과 국토정책적 의미, 그리고 지역 SOC 관련 연구에 대한 시사점을 외람되나 말씀드리려 한다.


효율, 형평 그리고 균형

포용에 관해 말하자면 가난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너무 모자란 상태는 일종의 진공과도 같아서, 모든 공급을 빨아들인다. 생산해야 하고, 팔아야 하고, 돈을 벌어서 더 생산하고, 남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더 결핍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효율적”으로. 다 차치하고 SOC를 보자. SOC는 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필요조건이고 유효수요를 견인하는 충분조건이므로 우리나라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거나 그보다 조금 더 많은 SOC 공급이 가능했고 또 그렇게 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 이면에서 형평과 분배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성장의 혜택을, 그 과실을 누가 정당한 몫 이상으로 가져가는가? 무엇이 그러한 불공평을 가능하게 하는가? 주로는 정치상황에 병행하는 또는 유착된, “심이 삐뚤어진 팽이” 같은 (쓰러지지는 않지만, 한쪽으로 쏠려 움직이는) 경제사회적 분배방식이 문제였고, 부수적으로는 사회의 안전망이 취약한 것이 문제였다. 지금 보면 주된 문제는 아직 말끔히 정리된 것 같지 않고, 부수적 문제에는 나름 많은 개선이 있었다.

분배가 형평하려면 “정당한 몫”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이렇다 할 공감대가 없다. 이 건 풀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일까, 관심의 대상이 사람집단이나 계층 간의 형평성에서 지역 간의 문제로 옮겨 가고, 주소 옮기며 문패를 바꿔 달았다 할까, “균형”의 이슈가 등장했다. 적어도 2000년대 이후 핵심적인 쟁점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비를 기축으로 한 지역 간 균형에 관한 논의였다. 이것은 사실상 지역(국토를 세분화한 공간단위)과 그 안의 사람들이 “정당한 몫” 찾기를 주장하는 것인데, 공간단위와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으니 양상이 훨씬 복잡하다. 한때 미봉적이고 간편한 해결책으로 “자원과 투자의 지역 간 균등배분”을 적용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아는 것 같다.

균형은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시소 혹은 천칭 저울로 비유할 때, 반드시 수평 상태일 필요는 없다.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더 이상 기울지 않고 안정적으로 정지되어 있으면 된다. 문제는 안정된 기울기의 각도를 정하는 것과, 양쪽 저울추에 올려놓는 무게인 “공간과 사람의 혼합체”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역시 아직 답은 없는 것 같다.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포용의 개념

형평과 균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포용을 생각하자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결국 그게 그거 아닐까, 표현만 좀 다르지. 그러나 엄연히 다른 것이 맞는 듯 하고 그래서 좀 더 고민해야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포용은 “남을 감싸거나 받아드림”이다(영어 어휘보다 우리나라 말뜻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개념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큰 공격은 이 용어가 기만적이라는 데 있다. 즉, 형평과 분배 이슈를 희석하는 가진 자, 힘센 자의 말장난, 혹은 잘해봐야 “관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포용적 국토라고 할 때, 포용은 형평과 균형처럼 상대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집단이나 다른 지역을 감싸고 받아드리는 주체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이다.

아직은 필자만의 생각일 수 있는데, 국토정책적인 관점에서 포용 개념을 인수분해하면 기회균등의 사회정의, 도시(지역, 공간)에 대한 권리, 기회와 잠재능력 증진을 핵심으로 하는 행복 추구, 정치적으로 올바른 참여와 소통 등의 구성요소들이 추출된다. 중요한 점은 포용“한다”는 것은 포용상태(status)를 지향한다기보다 주체적, 능동적으로 의식하고 “행(行)한다”는 것이다. 즉, 포용의 의미는 나와 남 사이에서, 남과 남 사이에서 서로 서로 작동하는 정의, 권리, 행복, 참여의 정당한 몫 찾기와 주기(인정하기)의 실천적 개념이다.


포용적 국토와 지역 SOC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포용적 국토(정책)”는 아무래도 이상한 표현이다. 국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를 안아줄 리 없으니, “국토공간에서의 포용성을 증진하기 위한 정책”이 좀 더 정확하다. 국토의 포용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어디서나 안전·쾌적·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고, 모든 사회적 계층·지역 간의 격차·배제·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그 기회의 균등, 잠재능력 증진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 권리 추구와 자발적 참여를 실천할 수 있는” 여건으로 일단 정의해 본다. 이를 위한 정책은 물론 정부만의 행위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주체들이 포함된 공공의 의사결정과 실천 과정이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포용적 국토발전을 위한 지역(교통) SOC라는 보다 구체적인 연구 주제가 있다. 여기에서는 우선 국토의 포용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교통 SOC (서비스) 관련해서 포용성은 특정 서비스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접근성과 이용 가격, 인구집단별, 하위 공간단위별 편차 같은 사항이 분석되어야 하고, 어느 수준까지 보장되어야 포용적인가와 같은 기준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역 SOC 투자가 적정한 수준인가? “포용적인” SOC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비용-편익은? 이런 문제를 다루어야 하겠으나 단기간에 다루기 쉽지 않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아직 형평과 균형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경제사회적 분배방식(사람 또는 지역의 정당한 몫 가르기 기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핵심인데, 여기에 대한 차분하고 솔직한 대화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빨리 완전한 결착을 봐야한다는 강박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역 SOC 정도의 현실적이고 비교적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논의해 보는 것이 효과적 일듯 싶다. 따라서 먼저 사회적 의사결정(포용성 기준 등을 정하는)에 관련된 정책과정, 참여, 거버넌스 문제를 짚어보고, 규범적인 차원에서의 정책과 제도방안을 궁구하는 편이 조금은 더 가벼울지 모른다.


여러분, “포오용” 하세요~

형평도, 균형도 모르면서 포용을 말하자니 자괴감이 든다. 앞서 말했지만 정당한 몫을 분배하는 방법이나 기준에 대해 중심을 잡을 수가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다툼거리만 만들게 된다. 2010~2011년간 공정사회니 공생발전이니 하던 것처럼 “내로남불”한 키워드만 던져놓고 무책임하게 끝나는 것 아닐까? 필자도 책임의 한 축을 감당해야 하겠지만 저만 갖고 그러시면 너무 억울하니, 독자여러분께도 감히 한 말씀 드리고 싶다.

“포용은 관계적이고, 필연적으로 행함이 따르는 실천적인 개념입니다. 말과 이해가 오가는 소통을 넘어, 남을 감싸고 받아드린다는 것은 인정과 양보를 포함하는 행함이지요. 너무 빤한 말씀이라 좀 쑥스러운 바 있으나, 나름대로 오롯하게 한 줄기 생각을 뽑아 본 터라 내심 뿌듯합니다. 요 작은 긍지를 밑천삼아 다시 말씀 올립니다. 우리, 포용합시다!”  


문정호_jhmoon@krih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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